우리는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도, 철학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

문제는 짧은 문장이 아니다. 한 문장이 자신을 성립시킨 구별과 반론을 지운 채, 더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위를 제공할 때 철학은 사유의 브랜드가 된다.

개념과 맥락 — 연작의 입구 · 두 번째 글

이 글의 목차

깊은 말이 생각을 대신할 때

대화 중 누군가 악의 평범성, 타자, 실존, 침묵이라는 말을 붙인다. 분위기가 달라진다. 방금까지 설명을 기다리던 문장이 이제 설명을 끝낸 문장처럼 들린다. 말은 길어지지 않았는데, 발화자는 더 깊이 생각한 사람이 된다.

철학의 광고 카피화라는 문제를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 광고 카피는 상품의 생산 과정을 설명하기보다 특정한 인상을 신속하게 결합한다. 비슷하게 철학적 표현도 자신을 만들었던 논증 없이 지성, 신중함, 급진성, 윤리성이라는 인상을 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광고나 모든 짧은 문장이 거짓이라는 말이 아니다. 논증의 노동을 하지 않고 논증을 통과한 사람의 자리를 얻는 방식이 문제다.

그런데 이 비판을 너무 쉽게 끝내면 곤란하다. 개념을 잘못 쓴 사람만 그 자리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용을 정확히 교정하는 사람도 진짜 철학을 아는 나라는 자리를 얻는다. 철학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피상적인 소비자뿐인가. 난해함을 이해한다는 인증을 교환하는 독서 공동체도 때로는 꽤 정교한 시장이다.

먼저, 광고 카피라는 말의 출처

철학이 광고 카피가 된다는 표현을 정성일이 아도르노의 말로 소개한 기록은 확인된다. 그러나 정성일이 그렇게 인용했다는 사실과 아도르노가 정확히 그 문장을 썼다는 사실은 별개의 주장이다. 그 차이를 지운 글로 개념 오용을 비판할 수는 없다.

2007년 5월 8일 『씨네21』 인터뷰에서 정성일은 어려운 영화평론에 관한 질문에 답하며 아도르노를 인용하겠다고 말한 뒤 이렇게 전한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점점 광고 카피가 되어가고 있다.”1

2009년 『경향신문』 인터뷰에서도 아도르노의 말로 다음 표현을 소개한다.

“오늘날 철학은 광고 카피가 되고 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더 이상 요약될 수 없는 철학이다.”2

상상마당의 「비평은 쓰레기다」에서는 다음 형태가 나온다.

“요약할 수 없는 글을 써라. 요약할 수 있는 글은 광고 카피밖에 없다.”3

웹페이지에 표시된 게시일은 2017년 6월 26일이다. 최초 인터뷰 날짜까지 동일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세 기록은 정성일이 글쓰기의 태도를 아도르노와 연결했다는 직접 자료다. 하지만 광고 카피라는 표현의 대응 독일어 원문, 저작명과 쪽수, 그가 표현을 접한 경로는 이번 조사로 특정하지 못했다.

『씨네21』의 정성일·정윤철 대담 기사 사진, 2007년. 사진과 인터뷰는 정성일이 인용한 기록의 자료이지 아도르노의 독일어 원전은 아니다.
『씨네21』의 정성일·정윤철 대담 기사 사진, 2007년. 사진과 인터뷰는 정성일이 인용한 기록의 자료이지 아도르노의 독일어 원전은 아니다. 씨네21 인터뷰 사진 · 저작권 보호 · 인터뷰 식별·비평용 원격 썸네일 · 출처
확인할 주장이번 확인 수준
정성일이 아도르노의 말로 광고 카피화를 이야기했다세 인터뷰 본문에서 확인
아도르노가 철학의 요약 전달 불가능성을 썼다『부정변증법』 독일어 스캔에서 확인
광고 카피라는 한국어 문장이 아도르노 원문의 직접 번역이다대응 원문 미확인
정성일이 일본 비평서·하스미를 통해 접했다전달 경로 미확인

미확인은 가짜라는 판정이 아니다. 찾지 못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 문장과 다르다. 따라서 재인용할 때는 정성일이 아도르노의 말로 소개한 표현이라고 쓴다. 그 한 단계의 거리를 표시하는 것이 인용의 힘을 빼앗는 일은 아니다. 출처가 실제로 서 있는 자리에 힘을 돌려놓는 일이다.

아도르노의 실제 문장 — 요약이 철학을 대체할 수 있는가

『부정변증법』의 서론, 1966년 확인 판본의 인쇄 42쪽에 다음 문장이 있다. 아래 한국어는 작업 번역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본질적으로 요약 보고로 전달될 수 없다.”

“Daher ist Philosophie wesentlich nicht referierbar.”4

하이델베르크, 1964년 4월. 앞 왼쪽 호르크하이머, 앞 오른쪽 아도르노, 뒤 오른쪽 하버마스. 한 학파의 사진은 동일한 철학의 증명이 아니다.
하이델베르크, 1964년 4월. 앞 왼쪽 호르크하이머, 앞 오른쪽 아도르노, 뒤 오른쪽 하버마스. 한 학파의 사진은 동일한 철학의 증명이 아니다. Jeremy J. Shapiro · CC BY-SA 3.0 · 출처

여기서 referierbar를 단순히 글자 수를 줄일 수 없다는 뜻으로만 읽으면 이상한 규칙이 된다. 철학책에는 목차도 있고, 강의에는 개요도 있고, 이 글도 지금 아도르노를 설명하고 있다. 아도르노의 문맥은 요점을 보고하는 것으로 그 철학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 가깝다.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그렇게 대체된다면 철학은 불필요할 것이며, 실제로 많은 철학이 그런 방식으로 보고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철학에 불리한 증거라고 비꼰다.4

바로 앞에서 그는 쇤베르크의 음악이론 비판을 끌어온다.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배우지만, 악곡이 그 사이에서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배우지 못한다는 취지다. 그 음악이론 발언의 쇤베르크 별도 원출전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아도르노가 쇤베르크를 호출한 문맥을 읽는다.5

아르놀트 쇤베르크,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된 사진. 파일명은 1948이지만 자료 설명은 1947년경으로 추정한다. 철학적 전개의 음악 비유를 듣기 위한 맥락이다.
아르놀트 쇤베르크, 로스앤젤레스에서 촬영된 사진. 파일명은 1948이지만 자료 설명은 1947년경으로 추정한다. 철학적 전개의 음악 비유를 듣기 위한 맥락이다. Florence Homolka · Attribution · 출처

첫 화음과 마지막 화음을 안다고 그 음악을 들은 것이 되는가. 사이의 긴장, 돌아오는 동기, 해소를 기다리던 시간이 사라진 뒤 남은 두 화음은 그 곡의 안내가 될 수는 있어도 그 곡 자체는 아니다. 철학에서도 최종 명제의 의미는 그것이 통과한 반론과 구별, 실패와 전개 속에서 바뀐다. 인간은 자유롭다는 결론만 읽으면,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이고 어떤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자유인지가 빠진다.

이때 음악은 분위기를 더하는 비유가 아니다. 아도르노에게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내용이 일어나는 방식이다. 설명을 쉽게 한다는 이름으로 전개를 제거하면, 내용은 같은데 포장만 바뀐 것이 아닐 수 있다. 결론의 단어는 남았지만 결론이 하는 일이 달라진다.

귀납의 결과를 연역하면 오용인가

철학자가 오랜 사고 끝에 정제한 문장을 그 사고와 분리해 새 사례에 붙인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귀납으로 만든 결과를 연역으로 사용하는 오류라고 정의하면 너무 많은 것을 한데 묶게 된다.

철학적 개념은 모두 사례의 귀납에서 생기지 않는다. 개념 분석, 현상학적 기술, 변증법적 전개, 사고실험과 반례가 개입한다. 이미 만든 개념을 새 사례에 적용하는 일도 그 자체로 잘못된 연역은 아니다. 무엇을 전제로 어떤 결론이 따라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도르노는 바로 같은 문맥에서 Gewebe, 직물이나 짜임이라는 표현을 쓴다. 중요한 것은 명제나 입장만이 아니라 철학 안에서 일어나는 일, 단선적인 귀납적·연역적 진행만이 아니라 서로 얽히는 사유의 짜임이라는 것이다.5

따라서 문제는 추론 형식의 이름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적용을 정당화하는 중간 작업이 사라졌는데, 개념의 권위만 남는 데 있다. 인간에게 다른 면도 있다는 전제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설명이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에서 소통은 언제나 실패한다는 결론도 자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유명한 이름은 누락된 전제를 생성하지 못한다.

헤겔의 생성과, 복원할 필요 없는 철학자의 머릿속

『정신현상학』 서문에서 헤겔은 결과도 현실적 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생성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확인한 1907년판 인쇄 5쪽의 핵심 구절은 “noch ist das Resultat das wirkliche Ganze, sondern es zusammen mit seinem Werden”이다. 원저의 최초 출간연도는 1807년이다.6

Jakob Schlesinger의 헤겔 초상, 1831년. 결과와 생성의 관계는 과정에도 점수를 주자는 격려가 아니라 진리의 전개에 관한 주장이다.
Jakob Schlesinger의 헤겔 초상, 1831년. 결과와 생성의 관계는 과정에도 점수를 주자는 격려가 아니라 진리의 전개에 관한 주장이다. Jakob Schlesinger (1792-1855) · Public domain · 출처

이를 노력한 과정도 칭찬하자는 말로 바꾸면 헤겔이 자기계발 문구가 된다. 결과가 어떤 전개와 매개를 통해 무엇이 되는가가 쟁점이다. 동시에 헤겔의 과학적 체계와 아도르노의 체계 비판을 같은 것으로 취급할 수도 없다. 두 사람을 연결한다고 그 차이가 소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념을 쓰기 위해 철학자의 모든 심리적 경험과 독서 순서를 재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발견의 경위와 정당화 근거는 구별해야 한다. 우연히 들은 말에서 개념을 발견했더라도 그 사용에는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저자의 생애를 세세하게 알아도 지금의 적용은 부당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아렌트는 「사유와 도덕적 고려」 419쪽에서 개념을 경험적으로 얻은 사실 뒤에, 어떤 권리로 그것을 가지고 사용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 두 질문의 구별은 개념 사용의 실제 원전 안에도 있다.7

원래 맥락을 매번 전부 복원하라는 요구는 독자를 지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다. 개념을 함부로 쓰지 말자는 규칙이 원전을 완전히 정복한 전문가만 발언하라는 명령이 된다. 우리는 생각을 살리기 위해 정확성을 요구했는데, 정확성은 어느새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증이 된다. 필요한 것은 무한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 내가 이어받은 구별과 바꾼 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책임이다.

『본래성의 은어』 — 설명하지 않는 깊이

아도르노의 『본래성의 은어』에는 오늘의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비추는 대목이 있다. 확인한 전사 PDF 3쪽에서 그는 은어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할 필요도, 제대로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된다고 비판한다. 말투가 그 일을 대신해주기 때문이다.8

여기서 은어는 비밀 암호라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본래성, 실존과 같은 특정한 말이 문맥과 구체적 내용보다 더 높은 의미의 분위기로 작동하는 문제다. 그러한 어휘에 익숙하다는 표지가 생각의 수행을 대신한다. 이것은 그 저작의 실존철학 비판을 오늘의 모든 전문용어에 그대로 적용하라는 지시가 아니라, 이 글의 비교를 위한 한 논점이다.

오늘의 예시를 만들어보자. 타자의 존엄을 말한 뒤 실제로 어떤 사람의 발언은 듣지 않는다. 불확실성을 존중한다고 말한 뒤 불확실한 사실을 확인하려는 질문을 억압한다. 깊이가 있다는 표지는 풍부한데, 그 깊이가 요구하는 불편한 수고는 없다.

지젝의 이데올로기 분석을 빌리면 이 현상을 단순한 지식 부족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은 자신이 그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문장을 통해 지적인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아는 것과 실제로 기대는 믿음은 어긋난다. 누군가는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을 것이라는 보증이 내 말에 힘을 준다.9

그 보증은 출처를 찾을 수 있는 학술적 신뢰와 다르다. 학술적 신뢰는 독자가 근거를 향해 이동하도록 돕는다. 권위의 환상은 그 이동 없이도 깊이를 얻었다고 느끼게 한다. 각주는 이 차이를 해결하는 마법이 아니다. 클릭한 각주에도 다시 이름만 있고, 그 이름이 지금의 주장을 어떻게 지탱하는지 없다면 링크가 달린 광고 카피일 뿐이다.

들뢰즈·가타리 — 개념 창조와 상품의 콘셉트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마케팅·디자인·광고가 개념이라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장악하는 일을 비판한다. 1994년 영어 번역본 서론 10쪽에는 비판이 판매 촉진으로 대체되는 움직임에 철학도 영향을 받았다는 대목이 있다. 16쪽에서는 개념이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10

이 논점은 유명한 문장을 짧게 인용하면 안 된다는 금지보다 크다. 개념을 창조하는 일이 상품 콘셉트와 커뮤니케이션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일로 바뀌는 것이다. 개념이 문제를 바꾸는 도구이기보다 누가 더 눈에 띄는 아이디어를 소유하는가의 상품이 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Verso 판 표지. 본문 대조에는 1994년 Columbia 영어 번역본을 사용했으며 이 표지가 그 스캔의 판본이라는 뜻은 아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Verso 판 표지. 본문 대조에는 1994년 Columbia 영어 번역본을 사용했으며 이 표지가 그 스캔의 판본이라는 뜻은 아니다. Verso · 저작권 보호 · 판본 식별·비평용 원격 썸네일 · 출처

여기에는 비평 자체에 되돌아오는 반전이 있다. 소비를 비판하는 가장 도발적인 문장이 소비 가능한 차별화의 표지가 될 수 있다. 나는 뻔한 자기계발 명언을 소비하지 않고 들뢰즈를 소비한다는 차이가, 소비로부터의 이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급진성도 잘 팔린다. 반상품화라는 표지까지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비판이 무효라는 결론이 아니라, 비판도 자신의 유통 방식을 물어야 한다는 요구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 창조는 옛 개념을 유리 진열장에 보존하자는 태도와도 다르다. 문제가 달라지면 개념의 짜임을 바꿀 수 있다. 창조적 전유는 허용되지만 원저자의 결론을 충실히 전달한다는 주장과 구별해야 한다. 이 자료는 정성일의 인용 출처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 별개의 관련 원전이다.

정성일, 하스미, 그리고 난해함의 상품 가치

정성일의 인터뷰에서 장문의 의미는 영화 소비를 잠시 중단시키고 독자가 생각할 시간을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긴 글의 길이는 시간을 붙잡는 장치일 수 있다. 효율적으로 결론을 받아 다음 작품으로 이동하려는 습관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2

상상마당 인터뷰에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긴 문장 일화 바로 다음에 아도르노의 글쓰기 지침이 나온다. 『시네마의 기억장치』라는 책의 존재와 2018년 신장판 서지는 출판사 자료로 확인했다. 그러나 38페이지가 한 문장이라는 세부와 아도르노 인용의 일본 경유는 대조하지 못했다. 인접한 두 일화는 전달 경로의 증거가 아니다.11

하스미 시게히코 『시네마의 기억장치』, 2018년 신장판. 출판사 표지로 책과 판본을 확인할 수 있지만 38페이지 한 문장이나 인용 전달 경로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하스미 시게히코 『시네마의 기억장치』, 2018년 신장판. 출판사 표지로 책과 판본을 확인할 수 있지만 38페이지 한 문장이나 인용 전달 경로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Film Art · 저작권 보호 · 판본 식별·비평용 원격 썸네일 · 출처

그러나 여기서 장문 비평을 옹호하는 것으로 멈출 수도 없다. 짧고 쉬우면 광고이고 길고 어려우면 철학이라는 규칙은 그 자체로 아주 훌륭한 광고 카피다. 단 두 조건으로 깊이를 판정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이해하지 못한 독자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설명하지 못한 글은 난해함을 자신의 품질 보증으로 쓴다.

긴 문장은 독자를 생각하게 할 수도 있고 질문할 기력을 빼앗을 수도 있다. 짧은 문장은 사고를 마비시킬 수도 있고 정확한 구별을 열 수도 있다. 아도르노를 비판의 보증인으로 내세우며 이 차이를 생략한다면, 아도르노의 이름으로 은어를 사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시험할 것은 길이가 아니라 저항의 성격이다. 읽기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실제로 쉽게 함께 놓이지 않는 것들의 긴장 때문인가, 아니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독자의 자격이 의심받기 때문인가. 독자의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요약 불가능성은 사유의 깊이가 아니라 권위의 방어일 수 있다.

짧은 문장에 다시 사유를 돌려주는 법

인용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 누구도 매번 처음부터 철학을 다시 쓸 수는 없다. 좋은 압축은 읽어야 할 곳을 가리킨다. 나쁜 압축은 읽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을 준다.

인용 앞에서 네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실제 출처는 어디인가. 원래 어떤 문제에 답하는가. 지금의 사례와 연결하려면 어떤 전제가 필요한가. 이 말 뒤에 설명이 더 시작되는가, 아니면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무식해지는가.

이 질문들은 철학자의 이름을 떼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말했으니 생각한 것으로 치자는 합의를 거절하는 것이다. 압축된 문장을 다시 풀어볼 수 있을 때, 짧은 말은 광고 카피가 아니라 사유로 돌아갈 주소가 된다.

그리고 이 글도 예외가 아니다. 긴 문장, 원전 링크, 아도르노의 이름이 있으니 읽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독자가 물었을 때 구별을 더 명료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근거를 찾지 못한 부분을 미확인으로 남길 수 있는가. 비판이 자기의 깊이를 보증하는 의식이 되지 않도록, 마지막 질문을 스스로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

철학은 요약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요약을 들은 다음,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만족에서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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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참고 URL

확인일: 2026-10-02. 직접인용의 한국어 작업 번역과 필자의 비평적 적용을 구별한다. 공개 PDF를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전문을 재배포하지는 않는다.

  • Theodor W. Adorno, Negative Dialektik, Suhrkamp, 확인 판본 저작권면 1966. Einleitung 안의 Zerbrechlichkeit des Wahren, 인쇄 42쪽, PDF 43번째 페이지. 독일어 원전 스캔. 기존 대화에 등장한 전집 6권 44쪽은 별도 판본을 대조하지 않아 채택하지 않았다.
  • Adorno, Jargon der Eigentlichkeit. 전사 PDF, PDF 3쪽. 인쇄 정본의 쪽수와 대조한 것은 아니다. 광고 카피라는 문장의 직접 출전으로 확정한 자료도 아니다.
  •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성일 ①」, 씨네21, 2007-05-08. 인터뷰 전문.
  • 백승찬, 「[경향과의 만남] 영화평론가서 ‘카페 느와르’로 감독 데뷔 정성일」, 경향신문, 2009-07-28. 인터뷰.
  • 양승철, 「비평은 쓰레기다」, KT&G 상상마당, 웹페이지 표기 2017-06-26. 인터뷰.
  • 蓮實重彥, シネマの記憶装置[新装版], Film Art, 2018-10-25, 308쪽, ISBN 978-4-8459-1811-9. 제목 작업 번역: 『시네마의 기억장치』. 출판사 소개·목차. 본문 전수 대조와 38페이지 한 문장 검증은 미완료다.
  • G. W. F. Hegel, Phänomenologie des Geistes, 원저 1807. 확인한 1907년 Leipzig 판 Vorrede, 인쇄 5쪽. 교정 전사·스캔.
  •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What Is Philosophy?, translated by Hugh Tomlinson and Graham Burchell,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p. 10, 16. 프랑스어 원저 1991. 영어 번역 스캔, 공식 출판사 보조 소개. 프랑스어와 영어를 문장별 대조한 것은 아니다.
  • Hannah Arendt, “Thinking and Moral Considerations: A Lecture,” Social Research 38(3), 1971, p. 419. 원문.
  • SEP: Adorno, SEP: Hegel, SEP: Deleuze, IEP: Žižek.
  • 광고 카피의 정확한 아도르노 원문, 정성일이 그것을 접한 중간 문헌, 쇤베르크 별도 원출전은 후속 확인 과제다. 못 찾았다는 사실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정으로 바꾸지 않는다.

Footnotes

  1. 1.

    정성일, 씨네21 인터뷰, 2007-05-08. 원문. 정성일의 재인용 기록이다. ↩

  2. 2.

    정성일, 경향신문 인터뷰, 2009-07-28. 원문. ↩ ↩2

  3. 3.

    정성일, 「비평은 쓰레기다」. 상상마당 게시본. ↩

  4. 4.

    아도르노, 『부정변증법』, 1966 확인 판본, 서론 42쪽/PDF 43. 스캔. ↩ ↩2

  5. 5.

    같은 쪽, 쇤베르크와 Gewebe, 귀납·연역을 논하는 단락. 원전. ↩ ↩2

  6. 6.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1907 확인 판본 5쪽. 전사·스캔. ↩

  7. 7.

    아렌트, 「사유와 도덕적 고려」, 419쪽. 원문. ↩

  8. 8.

    아도르노, 『본래성의 은어』, 확인 전사 PDF 3쪽. 전사. ↩

  9. 9.

    IEP: Žižek, §2b, 냉소·믿음·권위의 학술 해설. 인용 소비에의 적용은 필자의 해석이다. ↩

  10. 10.

    들뢰즈·가타리, What Is Philosophy?, 1994 영어판 10·16쪽. 스캔. ↩

  11. 11.

    정성일의 회고, 하스미의 출판사 서지. 인용 전달 경로는 미확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