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를 막는 처방이 아니라, 실재성과 다른 사건의 가능성을 관리하는 작동.

문제를 감추는 권력은 이해하기 쉽다. 더 불편한 권력은 문제를 보여준다. 심지어 우리 대신 분노하고 책임자를 처벌한다. 이제 다 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엇을 더 물을 수 있었는지가 사라질 수 있다.

이 글의 목차

먼저 이름의 방향부터 바로잡기

시뮬라크르의 저지 전략이라는 한국어 묶음은 시뮬라크르를 막는 독자의 기술로 오해하기 쉽다. 여기서는 반대로 보드리야르가 설명하는 시뮬라시옹과 저지·억지의 작동을 뜻한다. 프랑스어 dissuasion, 영어 deterrence는 상대의 행동을 단념시키거나 어떤 사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뜻을 가진다. 문맥에 따라 억지·저지·억제 등의 번역이 쓰인다. 이를 단 하나의 고정된 한국어 기술명이나 공식 단계표로 간주하지 않는다.1

디즈니랜드와 워터게이트의 문맥에서는 누군가 허구를 제거하고 진실을 복원하는 작전이라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질서가 자기 바깥을 묻는 질문, 자기 모형을 벗어나는 사건, 구별 자체를 흔드는 가능성을 중화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나 이 낱말이 저자의 모든 저작에서 오직 체제 방어만 뜻한다고 고정해도 안 된다. 『The Gulf War Did Not Take Place』67쪽에는 “Turn deterrence back against itself.”라는 문장이 나온다. 작업 번역으로 저지를 그 자신에게 되돌리라는 제안이다. 기존 입문 설명의 방향을 바로잡되 반대쪽의 단순화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한 문맥은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 사건과 전쟁의 이미지에서 구별한다.2

세 가지 작동을 나눠 보기

디즈니랜드는 허구가 특정 공간 안에 있다는 경계를 통해 바깥의 현실성을 재생한다. 워터게이트는 스캔들을 규탄하면서 도덕적·정치적 원칙을 재생한다. 핵 억지와 모형의 논의에서는 예상 가능한 위협과 대응의 순환이 사건의 가능성을 미리 관리한다. 공통 관심은 기호와 모형이 현실을 묘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나타나는 조건을 조직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공원의 울타리와 핵전략을 같은 절차의 두 사례라고 할 수는 없다.1

실재 원칙의 재생, 도덕 원칙의 재생, 사건 가능성의 중화라는 저지의 세 문맥
서로 이어지지만 동일하지 않은 세 문맥. 원문 전체를 하나의 조작 매뉴얼로 환원하지 않기 위한 자체 도식.

예컨대 사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은 실제로 중요하다. 그런데 그 결말이 나쁜 한 사람이 빠졌으니 이제 정상이라는 자동 결론을 낳는다면, 사고를 반복시키는 보상·권한·정보의 배치가 검사를 면할 수 있다. 이 조직 사례는 독립적인 설명용 비유다. 처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저지 전략이라고 판정하는 공식은 아니다.

은폐나 관심 돌리기와 무엇이 다른가

은폐는 어떤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주의 분산은 다른 뉴스로 관심을 옮길 수 있다. 저지의 문제는 사실이 충분히 드러난 뒤에도 생긴다. 어떤 분류와 결말이 그 사실의 의미를 미리 정해놓았는가? 폭로는 허용하되 구조를 바꿀 대안은 비현실적이라고 처리하는가? 의심의 범위가 이미 예정된 선택지 안에 갇히는가?

다만 실제 사안에서는 은폐·공개·조사·책임 이행·홍보가 섞인다. 철학적 이름 하나로 그 복합성을 생략하면, 저지를 설명하던 분석이 정작 추가 조사를 저지하게 된다. 이것이 이 개념의 우스우면서도 심각한 함정이다. 시뮬라시옹이라고 부른 순간 모든 자료를 다 읽은 사람처럼 느끼기 쉽다.

왜 전략인데 설계자가 없어도 되는가

어떤 효과가 발생했다는 설명과 누군가 그 효과를 의도했다는 주장은 다르다. 기자는 진심으로 진실을 밝힐 수 있고, 시민은 실제 개혁을 원할 수 있으며, 법원은 실제로 행정부를 제약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제도의 신뢰도 회복시킨다고 해서 모두가 비밀 지휘부의 배우였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원문에는 매우 강한 공모와 조작의 수사가 나온다. 그것을 온건한 미디어 효과론으로 지워서는 안 된다. 동시에 그 수사만으로 특정 언론과 국가기관이 사실상 같은 조직이었다는 역사 명제를 입증할 수도 없다. 의도·행위·효과·구조를 분리해야 원문의 도발도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미국의 신뢰와 한국의 냉소

진중권의 2003년 「매트릭스와 돌발 사태」는 미국에서 스캔들이 민주주의의 청결을 보증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부패를 이미 알고도 기존 정치세력에 표를 던지는 상황을 논한다. 중요한 것은 숨겨진 비리가 아니라, 드러난 비리가 다른 정치의 가능성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작동이다. 칼럼 말미의 구체적 대상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출현이다. 이 역사적 맥락을 빼면 글은 막연한 국민성 비판으로 변한다.3

한윤형의 2007년 글은 여기에 또 하나의 반전을 더한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으면서 그 역할을 특정 인물에게 맡기는 행동은, 시스템을 계속 일하지 않게 한다. 냉소와 열광은 반대 감정이지만 같은 무능한 제도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후보 지지와 모든 냉소가 같다는 실증 법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4

반대 증거를 받아들이는 읽기

이 안내서가 제안하는 점검은 다섯 가지다. 무엇이 실제로 확인되었는가. 무엇이 예외로 분리되었는가. 나머지 어떤 조건이 검사를 면했는가. 누가 어떤 권한과 안심을 얻었는가. 공개 뒤 무엇이 지속적으로 달라졌는가. 이것들은 보드리야르가 인증한 실무 절차가 아니라 그의 문제를 책임 있게 적용하려는 별도의 제안이다.

가령 독립 감시권이 생기고, 피해 회복이 이행되고, 재발 조건이 바뀌며, 그 결과가 검증 가능해졌다면 처음의 쇼라는 가설은 수정해야 한다. 신뢰 회복이 일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개선을 무효로 만들 수 없다. 반대로 새로운 구호만 나왔다면 그 구호를 변화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

사람을 처벌하는 것과 구조를 바꾸는 것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라는 말로 사람의 책임을 지워서도, 처벌이라는 결말로 구조의 책임을 지워서도 안 된다. 질문은 폭로를 그만하라는 것이 아니라, 폭로가 끝났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출처와 참고 URL

Footnotes

  1. 1.

    보드리야르, 원문, 도입의 「strategy of deterrence」와 디즈니랜드의 「deterrence machine」 문맥. ↩ ↩2

  2. 2.

    Baudrillard, 『The Gulf War Did Not Take Place』, Patton 번역, 1995, 67쪽. 원문. ↩

  3. 3.

    진중권, 2003년 칼럼, 본문 3·6·8–10문단. ↩

  4. 4.

    한윤형, 2007년 칼럼, 「무엇이 정치 참여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