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본이 진짜를 닮는가에서, 무엇이 진짜의 기준을 만드는가로.

가짜 지폐를 잡아내는 사람은 진짜 지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보드리야르의 질문은 더 불편하다. 진짜의 자격을 부여하는 그 기준 자체가 기호와 제도의 작동이라면, 우리는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가?

이 글의 목차

가장 쉬운 구분과 그 한계

시뮬라크르(simulacrum, 복수 simulacra)는 이미지·닮은 것·모사물이라는 긴 역사를 가진 말이다. 보드리야르의 후기 논의에서는 독립적인 원본을 얼마나 닮았는가만으로 지위를 판단할 수 없는 기호의 형상과 질서를 가리킨다. 시뮬라시옹(simulation)은 그러한 기호와 모형이 현실성을 생산하고 조직하는 작동이다. 하이퍼리얼(hyperreal)은 그 결과 모형과 현실의 선후·구별이 흔들리며, 모형이 현실의 판정 기준으로 작동하는 상태다.1

학습용으로 시뮬라크르는 형상, 시뮬라시옹은 작동, 하이퍼리얼은 현실성의 상태라고 나눌 수 있다. 다만 원문에서 이 낱말들이 딱 세 개의 상자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가짜 물건이라는 명사와 모방한다는 동사를 대응시키는 사전식 구분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호는 무언가를 뜻하게 하는 말·사진·가격·표지다. 재현은 어떤 대상을 표현하는 관계다. 거짓 재현이라면 여전히 비교할 대상이 남는다. 사진이 실제 건물의 창문 수를 틀리게 보여준다면 현장과 도면을 대조할 수 있다. 반면 어떤 건물이 좋은 건물인지, 어떤 얼굴이 정상적 얼굴인지 판단하는 표준 자체를 이미지가 조직한다면, 문제는 사진 한 장의 정확성을 넘어간다.

지도가 먼저라는 말

보드리야르는 보르헤스의 제국 지도 우화를 꺼낸 뒤 뒤집는다. 옛 우화에서는 영토가 먼저 있고 그것을 완전히 덮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현대적 시뮬라시옹에서는 모형이 먼저 놓이고 현실이 그 모형에 맞춰 출현한다. 원문은 이 역전된 우화마저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인다. 지도와 영토 사이의 확고한 차이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2

영토를 따라 만드는 지도와 모형에 맞춰 조직되는 현실을 비교한 설명도
재현의 정확도와 모형의 선행은 다른 질문이다. 원전의 논리를 풀어 그린 자체 도식이며, 모든 지도가 현실을 창조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쉽게 말해 음식 사진이 실제 음식을 소개하는 것과, 사진에 잘 나오는 음식을 만들고 그 장면을 좋은 식사의 표준으로 삼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설명을 위한 현대적 비유이지 보드리야르의 원문 사례나 사회 전체의 실증 증거가 아니다. 이미지가 물질을 마술처럼 창조한다는 뜻도 아니다. 물질적 생산과 평가가 어떤 모형에 맞춰 조직되는지를 보자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경계해야 한다. 현실에 광고와 예측이 있다는 온건한 관찰을 곧바로 실재의 소멸이라는 강한 철학적 명제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입문 비유는 문을 열지만 원문의 급진성을 대신하지 못한다.

아픈 척하는 것과 증상을 생산하는 것

원문은 리트레 사전을 경유해 병의 예를 든다. 병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숨기는 것, 병이 없는데 침대에 누워 아픈 척하는 것, 병의 징후를 실제로 생산하는 것은 다르다. 마지막 경우 증상이 진짜로 나타나므로 진짜 환자와 가짜 환자를 단순히 양분하던 의학적 판정의 체계가 곤란해진다는 것이다.3

이 사례는 정신신체 증상을 의지로 만들어낸다거나, 검사에서 원인이 안 잡히면 거짓 환자라는 현대 의학적 주장이 아니다. 원문의 역사적 의학·정신분석 언어를 오늘의 진단 기준으로 쓰면 안 된다. 핵심은 판정에 쓰는 징후가 생산 가능해질 때 판정체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다.

거짓말쟁이는 진실의 권위를 인정한 채 그것을 위반한다. 시뮬라시옹은 진실 판정의 징표와 작동을 제공하면서 그 권위가 어디에 기대는지를 흔든다. 속지 않았다는 만족만으로 통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미지의 네 국면

원문에 제시된 네 항목을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4

국면이미지가 하는 일남아 있는 전제
반영기초 현실을 비춘다표현과 대상을 비교할 수 있다
왜곡기초 현실을 가리고 뒤튼다왜곡되기 전의 참된 현실이 있다
부재의 은폐기초 현실이 없다는 사실을 가린다기호 뒤에 원본이 있는 것처럼 유지한다
순수 시뮬라크르외부 현실과의 대응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기호들의 작동이 현실성을 생산한다

첫째와 둘째의 차이보다 둘째와 셋째의 차이가 어렵다. 위조 졸업장은 실제 학교가 발급하는 진짜 졸업장을 전제한다. 그런데 학습의 질을 보증한다던 자격과 지표들이 자기들끼리 순환하며 교육의 의미를 대신한다면, 질문은 위조 여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교육 비유 역시 이 안내서의 적용이다. 특정 자격제도가 전부 내용 없다는 판정은 아니다.

네 국면을 화질 향상의 단계나 모든 이미지의 성장 순서로 읽으면 틀린다. 사진을 보고 몇 단계인지 채점하는 표도 아니다. 무엇이 그 이미지의 진실을 보증하는지 검토하는 구분으로 읽는 편이 낫다.

시뮬라크르의 세 질서와 혼동하지 않기

보드리야르의 다른 논의에서는 위조·생산·시뮬라시옹이라는 세 질서가 등장한다. 첫째는 자연적 원형과 닮음, 둘째는 산업적 생산과 반복 가능한 계열, 셋째는 코드와 모형에 따른 생성이라는 중심 원리를 갖는다. 르네상스 이후의 위조, 산업혁명의 생산, 후기 사회의 시뮬라시옹이라는 역사적 배치로 논의되지만, 단순하고 보편적인 세계사 법칙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5

『L’échange symbolique et la mort』(1976) 프랑스어판 77쪽은 세 질서를 각각 자연적 가치 법칙·시장적 가치 법칙·구조적 가치 법칙과 연결한다. 따라서 생산에서 모형으로의 이동을 단순한 복사 기술의 발전으로 축소할 수 없다. 무엇이 가치와 정당한 차이를 조직하는지의 전환이다.6

네 국면은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를 구분하고, 세 질서는 기호와 가치가 조직되는 지배적 양식을 구분한다. 숫자가 다른 판본의 같은 목록이 아니다. 같은 사물에서도 산업적 복제와 모형적 평가가 함께 작동할 수 있다.

플라톤과 들뢰즈와 보드리야르

플라톤적 문제는 어떤 모사가 참된 모범을 정당하게 닮았는가라는 선별에 가깝다. 들뢰즈는 열등한 가짜를 처벌하는 대신 그 선별의 위계를 뒤집는다. 보드리야르는 원본을 재현한다는 체계가 모형과 코드의 자기 작동으로 대체되는 문제를 밀어붙인다. 셋을 원본 없는 복제라는 한 공식으로 합치면 철학자 사이의 쟁점이 사라진다. 진중권의 씨네21 글을 읽을 때도 이 계보 차이를 유지해야 한다.7

왜 이 개념이 삶의 문제인가

오늘의 쟁점은 내가 가짜 세계에 갇혔는지 판정하는 데만 있지 않다. 내가 진짜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떤 사진·수치·역할·인정의 표준이 구성하는가에 있다. 나는 연출된 여행 사진을 비웃으면서도, 사진에 남기지 않은 여행은 어딘가 덜 완성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불신과 복종은 한 사람 안에서도 공존한다.

그렇다고 사진을 버리고 순수한 삶으로 돌아가라는 처방이 나오지는 않는다. 돌아갈 순수함이라는 이미지도 또 하나의 모형일 수 있다. 더 구체적인 출발은 어떤 표준이 누구의 경험을 잘 보이게 하고 누구의 경험을 사라지게 하는지 묻는 것이다. 이것은 이 안내서의 제안이며 원문이 보증한 탈출구는 아니다.

관련 읽기와 출처

Footnotes

  1. 1.

    보드리야르, 발췌 원문, 도입 「Abstraction today…」. ↩

  2. 2.

    같은 자료, 보르헤스 우화 도입과 「In fact, even inverted, the fable is useless」 문단. ↩

  3. 3.

    같은 자료, 「The divine irreference of images」, 리트레·병의 시뮬라시옹 대목. ↩

  4. 4.

    같은 자료, 「These would be the successive phases of the image」. ↩

  5. 5.

    Kellner, SEP, 시뮬라시옹과 후기 사상 설명. ↩

  6. 6.

    Baudrillard, 『L’échange symbolique et la mort』, 1976, 77쪽, 「Les trois ordres de simulacres」. 프랑스어 원전. ↩

  7. 7.

    진중권, 씨네21, 「이데아와 시뮬라크르」「시뮬라크르의 척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