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낄 권리와 판단할 책임
대중과 평론가 사이의 긴장
영화를 둘러싼 가장 격렬한 싸움은 작품 안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작품을 본 뒤 누가 말할 자격이 있는가를 놓고 벌어진다. 일반 관객은 말한다. 나는 지루했고, 감동하지 않았고, 배우의 연기가 좋았다. 평론가는 말한다. 그 지루함은 쇼트의 지속시간과 시점의 제한에서 왔고, 그 연기는 조명·렌즈·편집·음향이 함께 만든 효과다. 한쪽은 경험의 진실성을, 다른 쪽은 분석의 정밀성을 내세운다.
그런데 이 대립을 객관적인 전문가와 주관적인 대중의 싸움으로 이해하면 처음부터 잘못 들어간다. 평론가의 판단도 한 사람의 위치와 감각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일반 관객의 평가와 똑같은 사적 취향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평론은 훈련되고, 비교되고, 근거를 제시하며, 반론에 책임지는 주관적 판단이다.
문제는 주관성이 아니라 자의성이다. 모든 판단이 주관에게서 나온다는 사실과, 모든 판단의 질이 같다는 주장은 전혀 다르다. 이 글은 감상·리뷰·비평·평론의 차이에서 출발해, 대중의 느낄 권리와 전문가의 판단할 책임이 어디에서 충돌하는지 살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더 불편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정말 작품을 이해하려고 논쟁하는가, 아니면 작품 앞에서 틀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싸우는가.
1. 감상·리뷰·비평·평론은 무엇이 다른가
네 형식은 우열의 사다리라기보다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다.
| 구분 | 중심 질문 | 주된 언어 | 공적 책임 |
|---|---|---|---|
| 감상 | 이 작품이 나에게 무엇을 일으켰는가 | 경험·감정·기억 | 낮지만 없지는 않음 |
| 리뷰 | 볼 만한가, 누구에게 권할 것인가 | 소개·평가·추천 | 정보 정확성과 판단 근거 |
| 비평 | 작품은 어떻게 작동하며 무엇을 숨기는가 | 분석·해석·문제제기 | 텍스트 근거와 설명력 |
| 평론 | 이 작품을 어떤 기준과 맥락에서 평가할 것인가 | 논증·비교·공적 판단 | 반론 가능성과 기준 공개 |
감상은 작품이 한 사람의 몸과 기억에 남긴 흔적을 기록한다. 비평은 그 흔적을 작품의 형식·역사·권력·관습과 연결해 해석한다. 평론은 그 해석과 평가를 다른 사람이 검토하고 반박할 수 있는 공적 문장으로 만든다. 리뷰는 이 셋과 겹치면서도 작품의 소개와 소비 판단에 더 가까운 실용적 장르다.1
따라서 이론가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자동으로 비평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 감정에서 출발했다고 감상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감상에도 장르 관습과 사회적 기대라는 암묵적 이론이 들어 있다. 반대로 평론의 핵심은 유명한 개념을 인용하는 데 있지 않고, 관찰·해석·평가 사이의 연결을 독자에게 공개하는 데 있다.2
여기서 첫 번째 반전이 생긴다. 순수하고 이론 없는 감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취향은 이미 학교, 가족, 플랫폼, 장르, 홍보, 별점 체계가 가르친 분류를 통과해 있다. 이론을 거부하는 사람도 이론이 없는 게 아니라, 자기 이론을 상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 대중은 왜 스토리와 연기를 중심으로 영화를 말하는가
일반 관객이 영화에 관해 말할 때 스토리와 배우의 연기가 자주 중심이 된다는 관찰은 설득력이 있다. 사건과 인물은 일상 언어로 즉시 옮기기 쉽다. 반면 초점거리, 화면 깊이, 쇼트의 길이, 음향의 공간성, 시선의 배치는 실제 경험을 조직하면서도 별도의 언어를 배우지 않으면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이 형식을 보지 못한다고 결론 내리면 안 된다. 관객은 이미 형식의 효과를 느낀다. 다만 그것을 스토리가 좋았다, 배우가 미쳤다, 몰입감이 있었다 같은 압축된 말로 보고할 뿐이다. 관객이 연기가 좋았다고 할 때 실제로 경험한 것은 배우 개인의 표현뿐 아니라 클로즈업의 거리, 상대 배우의 반응 쇼트, 조명의 방향, 테이크 선택, 음악이 빠지는 순간이 합성된 결과일 수 있다.3
고전적 극영화의 연속편집은 관객이 편집 자체보다 인과적 사건과 인물의 목표를 따라가도록 설계된다. 형식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형식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매끄럽게 성공했기 때문일 수 있다. 편집은 사건으로, 조명은 표정으로, 음향은 긴장으로 사라진다. 영화의 가장 능숙한 기술은 자기 노동을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4
이 점에서 관객의 스토리·연기 중심 평가는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영화산업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관람 방식의 성공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이미 조금 속고 있다. 관객은 형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자신을 지웠기 때문에 내용만 직접 만났다고 믿는 것이다.
3. 나는 지루했다는 반박할 수 있는가
누군가 영화를 보고 나는 지루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그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난 경험의 보고다. 평론가가 사실 너는 지루하지 않았다고 판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장이 조금만 확장되면 논쟁 가능한 영역으로 넘어간다.
- 나는 지루했다. — 감정 보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작품에 관한 관찰
- 연출이 느슨해서 지루했다. — 인과 설명
- 그러므로 이 영화는 실패했다. — 가치 판단
-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허세다. — 타인에 대한 보편화
첫 문장에는 강한 1인칭 권위가 있다. 두 번째부터는 장면과 근거를 통해 검토할 수 있다. 사건이 정말 없었는지, 행동 대신 공간과 시간의 변화가 제시된 것은 아닌지, 지루함의 원인이 쇼트 길이인지 장르 기대인지, 의도된 지루함이 미학적으로 정당한지 따질 수 있다.
따라서 감정은 반박하지 않되, 감정에 붙인 설명과 판결은 반박해야 한다.
네가 지루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지루함의 원인이 연출 실패라는 설명과, 그래서 작품 전체가 나쁘다는 판단은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난 그렇게 느꼈다는 말은 대화를 끝내는 최종 판결이 아니라 조사가 시작될 자료다. 그러나 오늘날 감정의 존중은 종종 내 느낌에 이유를 묻지 말라는 명령으로 변한다. 감정이 인권처럼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감정을 검토하지 않을 권리로 바뀌는 순간, 진정성은 작은 독재자가 된다.
4. 흄의 역설: 모든 감정은 옳지만 모든 취향은 같지 않다
데이비드 흄은 「취미의 기준에 관하여」에서 이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먼저 다음과 같이 쓴다.
“All sentiment is right; because sentiment has a reference to nothing beyond itself.”5
우리말로 옮기면 모든 감정은 옳다. 감정은 자기 자신 이외의 어떤 것을 지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지루했다면 실제로 지루했던 것이다. 이 경험을 외부에서 거짓이라고 판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흄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신뢰할 만한 취미 판단을 한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다. 그가 제시한 좋은 판단자의 조건은 건전한 이성, 섬세한 감수성, 연습, 비교,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6 반복해서 보고, 부분의 차이를 식별하고, 여러 작품을 비교하고, 자기 선입견을 점검하는 능력은 판단의 신뢰도를 높인다.
여기서 감정의 사실성과 판단의 타당성이 갈라진다. 모든 감정은 발생했다는 의미에서 실제다. 그러나 그 감정을 작품의 성질과 가치에 연결하는 능력은 같지 않다. 전문가의 우위가 있다면 그것은 더 고상한 감정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감정을 더 세밀하게 분해하고 비교하며 수정할 수 있는 데 있다.
그렇다고 평론가라는 직함이 흄의 좋은 판단자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누가 섬세하고 편견이 적은 판단자인지를 판정하는 과정 자체가 다시 취향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성은 한 번 수여받는 왕관이 아니라 매번 글 속에서 입증해야 하는 수행이다.
5. 칸트: 주관적 판단이 왜 타인의 동의를 요구하는가
칸트는 《판단력 비판》 §8에서 미적 판단이 과학적 사실은 아니면서도 단순한 개인 기호로 끝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는 취미 판단을 할 때 우리가 보편적인 목소리로 말한다고 믿고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한다고 쓴다.7
“We believe that we speak with a universal voice, and we claim the assent of every one.”7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개인적 선호를 보고하는 데 가깝다. 그러나 이 영화는 훌륭하다고 말하는 순간, 다른 사람도 동의해야 한다는 요구가 숨어든다. 칸트가 말한 주관적 보편성이 바로 이것이다. 미적 판단은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으면서도 보편적 승인을 욕망한다.
그래서 영화 평점 논쟁은 쉽게 격렬해진다. 우리는 숫자 하나를 취향 고백처럼 입력하지만, 동시에 그 숫자가 작품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기를 바란다. 내 별점은 사적인 감정인 척하면서 타인의 시간과 작품의 명성에 공적 효력을 행사한다. 별점은 일기와 투표용지 사이에 걸쳐 있다.
6. 작품은 감정을 배송하지 않는다
예술의 이론과 기술이 감상과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발전했다는 말은 상당 부분 맞다. 클로즈업은 얼굴을 감정적 사건으로 만들고, 몽타주는 이미지 사이에 인과와 정서를 발생시키며, 음향은 보이지 않는 공간과 아직 오지 않은 사건을 예감하게 한다.
하지만 감독이 슬픔을 작품 안에 넣고 관객이 동일한 슬픔을 수령하는 전달모델은 성립하지 않는다. 존 듀이는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지각하기 위해 관람자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창조해야 한다고 쓴다.8
“To perceive, a beholder must create his own experience.”8
감독은 이미지·시간·소리·몸을 조직하지만, 관객은 자기 기억·기대·주의·문화적 지식으로 하나의 경험을 다시 만든다. 같은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슬픔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장이나 웃음이 되는 까닭은 작품의 효과가 단순한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크 랑시에르는 「해방된 관객」에서 보는 것 역시 주어진 감각의 배치를 확인하거나 바꾸는 행위라고 말한다.9 관객은 관찰하고, 선택하고, 비교하고, 해석하며, 눈앞의 장면을 자신이 읽고 살고 꿈꾸었던 것과 연결한다.
“Looking is also an action that confirms or modifies that distribution.”9
이 관점은 대중의 감상을 평론가가 교정해야 할 미완성품으로 보지 않는다. 관객도 이미 능동적인 번역자다. 다만 능동성은 근거 면제권이 아니다. 작품이 의도한 감정과 내가 받은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내 해석을 절대화할 이유가 아니라, 그 간극을 더 자세히 조사할 이유가 된다.
7. 비평은 감정을 논박하는 대신 다시 보게 한다
아널드 아이젠버그는 「Critical Communication」에서 비평의 언어를 지각을 위한 안내, 즉 directions for perceiving으로 설명한다.2 비평가의 문장은 수학적 증명처럼 독자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어떤 관계를 직접 보도록 이끈다.
관객이 이 장면은 지루했다고 말할 때 비평은 이렇게 답할 수 있다.
카메라가 인물에게 접근하지 않고 동일한 거리에서 머물며, 배경음도 감정적 변화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이 인물의 시간을 외부에서 견디도록 만든다.
이 설명은 지루함을 취소하지 않는다. 지루함을 정보 부족, 반복의 압박, 쇼트의 지속, 인물과의 거리, 장르적 기대의 좌절로 분화한다. 비평이 성공해도 관객은 여전히 그 영화를 싫어할 수 있다. 다만 이제 더 정확하게 싫어할 수 있다.
노엘 캐럴은 비평을 근거를 갖춘 평가, evaluation grounded in reasons로 규정한다.1 기술·분류·맥락화·분석·해석은 평가를 대신하는 장식이 아니라, 왜 그 평가가 타인에게도 고려될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활동이다.
따라서 좋은 평론가는 나는 이렇게 느꼈다고 끝내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느꼈으며, 그 판단이 작품의 어떤 특징에서 나왔고, 어떤 비교와 기준으로 지지되는지 공개하겠다고 말한다. 전문성은 무오류성이 아니라 자기가 틀릴 수 있는 자리를 글 안에 만드는 기술이다.
8. 경험미학: 훈련은 감정을 바꾸는가
van Paasschen·Bacci·Melcher의 2015년 연구는 미술 전문가 20명과 비전문가 40명에게 150점의 재현·추상 작품을 평가하게 했다. 기본적인 긍정·부정 정서와 각성 정도에서는 집단 차이가 크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작품을 더 아름답고 선호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비전문가 일부에게 제공한 짧은 교육은 선호 평가에 제한적인 영향을 주었다.10
이 결과는 전문가의 감정이 일반인의 감정보다 더 진실하다는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본 정서 반응과 아름다움·선호 같은 인지적으로 조절되는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지식은 감정을 제거하기보다 감정이 가치 판단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Fayn 외의 2018년 연구는 참여자 214명이 시각예술 작품 18점을 보며 느낀 정서를 조사했다. 예술 지식이 많을수록 부정적 감정을 더 세밀하게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관계는 작품을 이해한다고 느끼는 정도에 의해 부분적으로 매개되었다. 다만 상관연구이므로 지식이 감정분화를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11
이 연구들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방어력 있는 문장은 교육받은 감정이 더 옳다는 말이 아니다. 훈련은 감정의 해상도를 높일 수 있다. 단순히 불쾌했다가 아니라 불안했다, 섬뜩했다, 소외감을 느꼈다, 잊히지 않았다고 구분하게 만든다. 감상 교육은 감정을 교정하는 세뇌가 아니라, 감정 내부의 차이를 더 많이 들을 수 있게 하는 훈련에 가깝다.
9. 영화 연구: 전문가는 정말 다르게 보는가
Melgar Estrada 외는 영화 전문가 18명과 비전문가 18명에게 영화 클립 5편을 보며 실시간 태그를 붙이게 했다. 두 집단 모두 인물·사물·행동 같은 사실적 태그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빈도가 낮은 태그에서는 전문가가 편집·쇼트·미장센·장르·내러티브 장치와 관련된 전문용어를 더 많이 사용했다.12
이 결과는 전문가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른 영화를 본다는 낭만적 신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선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본다. 다만 전문가는 덜 빈번한 형식적 특징을 더 다양하게 명명한다. 연구 자체도 소규모 태깅 실험이며 영화 평가를 직접 측정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12
Lotman·Mõttus·Tikka의 2023년 eye-tracking 예비연구는 전문 촬영감독과 촬영 전공자들이 전경·배경, 초점 안팎의 인물, 서로 경쟁하는 화면 단서 사이를 탐색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를 지각의 전문화, perceptual professionalization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참여자가 적고 질적 관찰 중심이어서 전문가 일반에 대한 강한 결론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13
Plucker 외는 2001~2005년 영화 680편에 대한 평론가·아마추어 평가와 대학생 169명의 평가를 비교했다. 전문 평론가는 평균적으로 더 엄격했으며, 대학생 중 영화를 많이 본 사람의 평가는 평론가 및 아마추어 평가와 더 높은 상관을 보였다. 전문성과 비전문성은 단절된 신분이 아니라 경험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연속체에 가깝다.14
한편 Delaney 외의 서사곡선 연구는 일반 관객이 익숙한 이야기만 좋아할 것이라는 예상에 제동을 건다. 여러 장르에서 일반 관객과 평론가 모두 장르 전형과 다른 서사곡선에 더 높은 평가를 주었고, 두 집단의 차이는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15 스토리를 중심으로 말한다는 것과 단순하고 익숙한 스토리만 선호한다는 것은 전혀 같은 명제가 아니다.
따라서 직접 증거와 간접 증거를 구분해야 한다. 일반 대중이 언제나 스토리와 연기만 평가한다는 보편법칙은 아직 없다. 다만 훈련과 경험이 무엇을 구별하고 명명하며 비교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축적되어 있다.
10. 전문가의 권위도 순수하지 않다
여기까지 읽으면 평론가의 승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은 언제나 제도 안에서 작동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구별짓기》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Taste classifies, and it classifies the classifier.”16
취향은 분류하고, 동시에 분류하는 사람을 분류한다. 우리는 영화만 평가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을 좋아하고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전시한다.
예술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교양과 인내심을, 대중영화를 좋아한다는 말은 허세에 속지 않는 솔직함을 연출할 수 있다. 평론가를 싫어한다는 선언도 나는 엘리트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정체성 표지가 된다. 취향의 언어는 작품을 판단하는 동시에 화자의 문화자본과 소속을 배치한다.16
Greta Hsu의 미국 영화산업 연구는 비평가가 합리적이고 방어 가능한 평가 기준을 구축함으로써 전문성을 인정받지만, 바로 그 명확한 평가 도식 때문에 자신이 평가하기 쉬운 범주에 더 많은 관심을 배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17 전문가는 더 많이 보는 동시에 자기 이론으로 잘 포획되는 것만 더 잘 볼 위험이 있다.
Pang·Liu·Golder가 미국 영화 408편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앞서 형성된 관객 평점이 이후 평론가의 평점에도 영향을 주는 패턴이 나타났다. 관객 리뷰 수가 많을수록 영향은 커졌고, 영화산업 전문매체보다 일반 매체의 평론가에게서 더 강했다.18 평론가는 대중과 단절된 고독한 심판자가 아니라 독자·언론사·시장·명성을 의식하는 사회적 행위자다.
Verboord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화 리뷰 624편을 분석한 연구는 동료 생산 비평이 기존의 위계적 문화평가 모델에 도전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는다고 본다.19 전문 비평과 관객 리뷰는 서로를 대체하기보다 경쟁하고 모방하며 새로운 평가 장을 만든다.
전문가의 권위를 해체했다고 자동으로 취향의 민주주의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 빈자리에는 Rotten Tomatoes의 집계율, 포털 평점, 유튜브 조회수, 추천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큰 타자가 들어온다. 사람인 평론가를 몰아냈다고 생각했는데, 판단을 더 불투명한 시스템에 넘긴 셈이다.
11. 두 개의 환상과 두 종류의 향유
대중과 평론가의 갈등 아래에는 서로 다른 환상이 있다.
평론가의 환상은 충분한 지식과 이론이 있다면 자기 취향이 더 이상 취향이 아니라 정당한 판결이 된다는 것이다. 이 환상은 관객이 놓친 것을 발견하는 지적 향유를 제공한다. 작품보다 대중의 무지를 분석하는 일이 더 즐거워지는 순간, 비평은 문지기 놀이가 된다.
일반 관객의 환상은 내가 진심으로 느낀 것이므로 내 판단은 누구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환상은 감정의 진정성을 권력으로 바꾼다. 흥행 성적과 관객 평점으로 평론가를 조롱할 때, 감상의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복수극으로 변한다.
한쪽은 지식을 방패로 쓰고, 다른 쪽은 진정성을 방패로 쓴다. 둘 다 작품을 이해하려는 것만큼이나 작품 앞에서 틀린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양쪽이 서로 반대인 척하면서 같은 명령에 복종한다는 점이다.
너의 판단을 의심받지 말라.
전문가의 권위와 대중의 감정은 서로 싸우지만, 둘 다 자기 판단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요구한다. 이때 작품은 논쟁의 대상이라기보다 자기 정체성을 방어하기 위한 인질이 된다.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한다」의 마지막에 제안한 것은 해석학 대신 예술의 에로틱스였다.20 이 말은 분석을 버리자는 단순한 반지성주의가 아니다. 작품을 이미 아는 이론의 사례로 정복하기 전에, 작품이 우리 감각을 어떻게 건드리는지 다시 보자는 경고에 가깝다. 대중에게는 느낌의 절대화를, 전문가에게는 해석의 과잉을 경계하게 한다.
12. 더 나은 반론의 순서
누군가 난 그렇게 느꼈다고 말할 때 좋은 반론은 다음 순서를 따른다.
1) 감정을 인정한다
네가 지루하고 불쾌했다는 것은 실제 경험이다. 그것을 교정하려 들지 않는다.
2) 감정과 설명을 분리한다
지루함의 원인이 반드시 연출 실패인 것은 아니다. 장르 기대, 정보의 배치, 관람 상태, 쇼트의 지속, 의도된 불편함이 함께 작동했을 수 있다.
3) 작품의 구체적 근거로 돌아간다
어느 장면의 어떤 구도·편집·연기·음향이 그 느낌을 만들었는지 묻는다. 비평은 추상적 권위가 아니라 작품으로 되돌아가는 길이어야 한다.2
4) 비교한다
비슷하게 느린 다른 영화와 무엇이 다른지, 첫 관람과 재관람에서 같은지, 작품 전체에서 그 형식이 일관되는지 살핀다. 흄이 말한 연습과 비교가 여기에서 작동한다.6
5) 의도와 성취를 분리한다
의도된 지루함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의도를 이해하고도 형식적 단조로움을 비판할 수 있다. 이해는 복종이 아니다.
6) 잔여 불일치를 허용한다
모든 근거를 검토한 뒤에도 서로 다른 평가가 남을 수 있다. 좋은 비평은 차이를 제거하는 최종판결이 아니라, 무엇을 두고 disagree하는지를 더 정확하게 만든다.
13. 전문성이 정당성을 얻는 조건
평론가의 전문성은 다음 조건에서만 정당한 권위가 된다.
- 작품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한다.
- 감정·관찰·해석·평가를 구분한다.
- 비교 작품과 역사적 맥락을 공개한다.
- 자기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인정한다.
- 관객의 반응을 무지로 환원하지 않는다.
- 반론을 통해 판단을 수정할 수 있다.
- 어려운 말이 아니라 더 많은 차이를 보게 하는 말을 사용한다.
전문성은 최종 발언권이 아니라 더 무거운 입증 책임이다. 평론가가 일반 관객보다 더 많은 지식과 제도적 영향력을 가졌다면, 바로 그 때문에 더 많은 근거를 제시하고 더 쉽게 수정되어야 한다.
반대로 관객의 경험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작품에 대한 모든 추론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느낄 권리와 판단의 면책특권은 다르다. 관객도 작품을 공적으로 평가하는 순간 자기 감정이 어떻게 판단으로 확장되었는지를 설명할 책임이 생긴다.
맺음말: 감정의 주권이 아니라 감정의 교육
감상 교육의 목적은 정답 감정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의 나는 지루했다를 나는 지루하지 않았다로 교정하는 것도 아니다. 지루함 안에서 무관심, 초조함, 반복의 피로, 시간의 압박, 인물과의 거리,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당혹감을 구분하게 만드는 일이다.
훈련받은 감상은 덜 주관적이 되는 게 아니다. 자기 주관성이 어떤 형식·기억·기대·제도에 의해 구성되었는지를 더 많이 아는 감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앎은 작품을 더 좋아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더 정확하게 거부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좋은 평론의 목적은 관객에게 네 감정은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관객이 느낀 것보다 더 많이 느끼고, 판단한 것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다. 동시에 좋은 평론가는 대중의 순진함만 해체하지 않고, 자기 판단을 가능하게 한 교육·제도·취향의 권위도 함께 노출해야 한다.
결국 좋은 관객과 좋은 평론가의 차이는 누가 더 객관적인가에 있지 않다. 누가 자기 느낌을 더 정밀하게 만들고, 자기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더 오래 견디는가에 있다. 작품을 본다는 것은 작품을 판정하는 일인 동시에, 작품 앞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판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인지를 들키는 일이기도 하다.
미주
출처와 참고 URL
철학·미학·비평이론
- Hume, David. “Of the Standard of Taste.” 1757. https://davidhume.org/texts/empl1/st
- Kant, Immanuel. Critique of Judgement. Translated by J. H. Bernard. https://www.gutenberg.org/ebooks/48433
- Dewey, John. Art as Experience. 1934. https://archive.org/stream/deweyjohnartasanexperience/DEWEY+John,+Art+as+an+Experience%22_djvu.txt
- Isenberg, Arnold. “Critical Communication.” The Philosophical Review 58, no. 4 (1949): 330–344. https://doi.org/10.2307/2182081
- Sontag, Susan. “Against Interpretation.” 1964. https://www.susansontag.com/SusanSontag/books/againstInterpExcerpt.shtml
- Bourdieu, Pierre.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https://monoskop.org/images/e/e0/Pierre_Bourdieu_Distinction_A_Social_Critique_of_the_Judgement_of_Taste_1984.pdf
- Rancière, Jacques. “The Emancipated Spectator.” Artforum, March 2007. https://www.artforum.com/features/the-emancipated-spectator-175248/
- Carroll, Noël. On Criticism. Routledge, 2009. https://www.taylorfrancis.com/books/mono/10.4324/9780203881125/criticism-noel-carroll
- Bordwell, David. “Three Dimensions of Film Narrative.” http://www.davidbordwell.net/books/poetics_03narrative.pdf
경험미학·영화인지·전문성 연구
- van Paasschen, Jorien, Francesca Bacci, and David P. Melcher. 2015.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34241
- Fayn, Kirill, et al. 2018. https://doi.org/10.1080/02699931.2017.1322554
- Melgar Estrada, Liliana, et al. 2017. https://doi.org/10.1002/asi.23656
- Lotman, Elen, Viire Mõttus, and Pia Tikka. 2023. https://doi.org/10.2478/bsmr-2023-0010
- Hutson, John P., et al. 2017. https://doi.org/10.1186/s41235-017-0080-5
- Plucker, Jonathan A., et al. 2009. https://doi.org/10.1002/mar.20283
- Delaney, Liam, et al. 2019. https://doi.org/10.3758/s13428-018-1168-7
비평가·관객·문화평가의 사회학
- Hsu, Greta. 2006. https://doi.org/10.1093/icc/dtl009
- Pang, Jun, Yang Liu, and Peter N. Golder. 2022. https://doi.org/10.1007/s11747-021-00816-9
- Verboord, Marc. 2014. https://doi.org/10.1177/1461444813495164
이미지 출처와 이용 조건
- Allan Ramsay, David Hume, 1766.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llan_Ramsay_-_David_Hume,_1711_-_1776._Historian_and_philosopher_-_Google_Art_Project.jpg
- Immanuel Kant portrait, circa 1790.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Immanuel_Kant_portrait_c1790.jpg
- Underwood & Underwood, John Dewey.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John_Dewey_cph.3a51565.jpg
- Annette Bozorgan/Petitfestival, Jacques Rancière, 2009.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anciere.jpg
- Bernard Lambert, Pierre Bourdieu, 1996.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ierre_Bourdieu_(1).jpg
- Parufamet, Metropolis (1927) - US Lobby Card.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Metropolis_(1927)_-_US_Lobby_Card.jpg
인용·자료 사용 원칙
- 영어 직접 인용은 링크된 원문에서 문장을 대조했고, 한국어 번역은 별도 표기가 없는 한 필자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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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미학의 시각예술 연구는 영화 연구의 직접 증거가 아니라 감정·지식·평가의 관계를 설명하는 간접 증거로 구분했다.
- 소규모·예비연구는 일반화하지 않고 연구진이 밝힌 한계를 함께 적었다.
- 인물 사진과 작품 이미지는 공개 도메인 또는 재사용 조건이 명시된 Wikimedia Commons 자료를 작은 식별용 썸네일로 사용했으며, 각 이미지 바로 아래에 저작자·연도·라이선스·원본 페이지를 표시했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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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ël Carroll, On Criticism (Routledge, 2009), 특히 비평을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평가로 규정하는 서론부. 출판사 페이지, Notre Dame Philosophical Reviews 서평. ↩ ↩2
-
Arnold Isenberg, “Critical Communication,” The Philosophical Review 58, no. 4 (1949): 330–344, DOI. 비평적 이유를 증명이라기보다 작품을 지각하도록 이끄는 안내로 보는 논의는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Aesthetic Concept”도 참조. ↩ ↩2 ↩3
-
David Bordwell, “Three Dimensions of Film Narrative,” Poetics of Cinema 관련 공개 원고, PDF; David Bordwell and Kristin Thompson, Film Art: An Introduction. 스토리·플롯·스타일의 관계에 관한 문단은 이 논의를 요약·적용한 것이다. ↩
-
John P. Hutson et al., “What Is the Role of the Film Viewer? The Effects of Narrative Comprehension and Viewing Task on Gaze Control in Film,” Cognitive Research: Principles and Implications 2, 2017, article 46, DOI, PMC 원문. 연구진은 영화 형식이 시선을 강하게 동기화하는 현상을 ‘Tyranny of Film’ 가설과 연결한다. ↩
-
David Hume, “Of the Standard of Taste,” 문단 ST 7, Hume Texts Online 원문. 본문 한국어는 필자의 번역. ↩
-
Hume, “Of the Standard of Taste,” 문단 ST 23. 흄은 “strong sense,” “delicate sentiment,” practice, comparison, freedom from prejudice를 좋은 판단자의 조건으로 든다. 원문, SEP 해설. ↩ ↩2
-
Immanuel Kant, Critique of Judgement, §8, J. H. Bernard 영어 번역본. Project Gutenberg 원문. 본문 한국어는 필자의 번역. ↩ ↩2
-
John Dewey, Art as Experience (1934), 관람자가 자기 경험을 능동적으로 구성한다는 논의. Internet Archive 텍스트. 본문 한국어는 필자의 번역. ↩ ↩2
-
Jacques Rancière, “The Emancipated Spectator,” Artforum, March 2007, 원문. 본문 한국어는 필자의 번역. ↩ ↩2
-
Jorien van Paasschen, Francesca Bacci, and David P. Melcher, “The Influence of Art Expertise and Training on Emotion and Preference Ratings for Representational and Abstract Artworks,” PLOS ONE 10, no. 8 (2015): e0134241, DOI·원문. 시각미술 연구이므로 영화에 직접 일반화하지 않고 감정 반응과 미적 평가의 구분을 위한 간접 증거로 사용했다. ↩
-
Kirill Fayn et al., “Nuanced Aesthetic Emotions: Emotion Differentiation Is Related to Knowledge of the Arts and Curiosity,” Cognition and Emotion 32, no. 3 (2018): 593–599, DOI, 공개 PDF. ↩
-
Liliana Melgar Estrada et al., “Time-Based Tags for Fiction Movies: Comparing Experts to Novices Using a Video Labeling Game,” Journal of the Association for Information Science and Technology 68, no. 2 (2017): 428–441, DOI, CWI 공개 PDF. 전문가 18명·비전문가 18명, 클립 5편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태깅 연구이며 평가 자체를 측정한 연구는 아니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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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n Lotman, Viire Mõttus, and Pia Tikka, “Cinematographers’ Perceptual Professionalization from Novices to Experts,” Baltic Screen Media Review 11 (2023), DOI, 공개 PDF. 저자들이 명시했듯 소수 참여자의 eye-tracking 기록을 질적으로 관찰한 예비 사례연구다. ↩
-
Jonathan A. Plucker et al., “Do Experts and Novices Evaluate Movies the Same Way?” Psychology & Marketing 26, no. 5 (2009): 470–478, DOI. British Psychological Society Research Digest의 연구 해설도 함께 참고했다. ↩
-
Liam Delaney et al., “Genre-Typical Narrative Arcs in Films Are Less Appealing to Lay Audiences and Professional Film Critics,” Behavior Research Methods 51 (2019): 1403–1414, DOI, Springer 원문 페이지. ↩
-
Pierre Bourdieu,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trans. Richard Nic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6, 공개 열람본. 본문 한국어는 필자의 번역.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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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ta Hsu, “Evaluative Schemas and the Attention of Critics in the U.S. Film Industry,” Industrial and Corporate Change 15, no. 3 (2006): 467–496, DOI, eScholarship 공개본. ↩
-
Jun Pang, Yang Liu, and Peter N. Golder, “Critics’ Conformity to Consumers in Movie Evaluation,” Journal of the Academy of Marketing Science 50 (2022): 864–887, DOI, Springer 초록. ↩
-
Marc Verboord, “The Impact of Peer-Produced Criticism on Cultural Evaluation: A Multilevel Analysis of Discourse Employment in Online and Offline Film Reviews,” New Media & Society 16, no. 6 (2014): 921–940, DOI, Erasmus University 서지 페이지. ↩
-
Susan Sontag, “Against Interpretation” (1964), Against Interpretation and Other Essays (Farrar, Straus & Giroux, 1966). 마지막 문장 “In place of a hermeneutics we need an erotics of art.” 공식 저자 사이트의 에세이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