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이미지: Verso Books 저자 페이지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사진. 이 공개 노트에서는 원본 이미지를 내려받지 않고, 독서 안내용 작은 외부 썸네일로만 표시한다.
한 줄 요약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는 계급·국민·인민 같은 정치 주체가 이미 완성된 실체로 존재한다고 보지 않고, 담론·기표·적대·헤게모니 속에서 구성된다고 본 아르헨티나 출신 정치이론가다. 그는 샹탈 무페와 함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의 대표적 기준점을 만들었고, 후기에는 포퓰리즘을 단순한 비합리적 대중 선동이 아니라 인민이 구성되는 정치 논리로 재해석했다.
비판적 주석을 붙이면 이렇다. 문제는 라클라우가 포퓰리즘을 좋다고 말했느냐가 아니다. 더 불편한 문제는 우리가 왜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스스로를 이미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관찰자 자리에 놓고 싶어 하느냐다. 라클라우가 건드리는 지점은 바로 그 안전한 관찰자 자리다.
기본 정보
- 이름: Ernesto Laclau /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 출생과 사망: 1935년 10월 6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2014년 4월 13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사망
- 분야: 정치이론, 정치철학, 담론이론,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헤게모니론, 포퓰리즘 이론
- 학문적 기반:
-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 영국 University of Essex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University of Essex에서 정치이론 교수로 활동했고, 이데올로기와 담론 분석 연구 흐름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 주요 협업자:
- 샹탈 무페 Chantal Mouffe
-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
- 슬라보예 지젝 Slavoj Žižek
라클라우는 흔히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정치이론의 핵심 인물로 불린다. 여기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란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히 폐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결정론이나 계급 환원론처럼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굳어진 확신을 다시 문제 삼는 태도에 가깝다.
왜 중요한가
라클라우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 노동계급은 왜 항상 하나의 정치 주체로 행동하지 않는가?
- 민주주의, 국민, 인민, 자유, 정의 같은 말은 왜 서로 다른 진영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는가?
- 정치적 대표는 단순히 이미 있는 사람들의 요구를 반영하는가, 아니면 그 요구들을 새롭게 묶어 주체를 만들어내는가?
-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타락인가, 아니면 민주주의 정치가 대중적 주체를 구성하는 방식 중 하나인가?
라클라우는 여기서 정치가 이해관계의 자동 표현이 아니라 의미를 묶고, 적대를 구성하고, 대표할 이름을 만드는 실천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정치는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사회를 번역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자기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상상할지 둘러싼 투쟁이다.
사상적 배경
라클라우의 이론은 여러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그람시
라클라우는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분석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적 갈등을 계급 하나로 환원하는 설명에는 비판적이다. 특히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라클라우에게 중요하다. 그람시가 보여준 것은 지배가 물리적 강제만으로 유지되지 않고, 문화·상식·동의·지도력을 통해 작동한다는 점이었다.
라클라우는 이 문제를 더 밀어붙인다. 헤게모니는 단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흩어진 사회적 요구들을 특정한 정치적 질서 안에 묶는 방식이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라클라우는 의미가 사물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관점을 받아들인다. 어떤 말의 정치적 의미는 사전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말들과 연결되고, 어떤 적과 대립하며, 어떤 감정과 기억을 불러오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라캉과 기표의 정치
라클라우의 빈 기표 개념에는 라캉적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정치적 주체는 완전히 투명한 자기이해를 가진 합리적 개인들의 합이 아니다. 결핍, 동일시, 상징적 이름, 대표의 실패가 정치의 중심에 들어온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정치가 가장 이성적이라고 주장할 때조차 어떤 상징적 환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국민, 민주주의, 자유, 공정 같은 말은 단순한 정책 항목이 아니라 욕망이 걸리는 이름이다.
핵심 개념
담론 discourse
라클라우에게 담론은 단순한 말이나 문장이 아니다. 사회적 대상과 정체성이 의미를 얻는 관계망 전체에 가깝다. 국민, 민중, 노동자, 엘리트, 개혁, 정상화 같은 말은 사전적 의미만으로 정치적 힘을 얻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적, 어떤 기억, 어떤 분노, 어떤 기대와 연결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정치적 물체가 된다.
접합 articulation
접합은 서로 다른 요구와 정체성, 상징을 하나의 정치적 배열 속에 묶는 행위다. 임금 문제, 주거 불안, 청년 실업, 지역 소외, 반부패 정서가 원래부터 하나의 요구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정치 담론이 그것들을 기득권 대 국민, 체제 대 인민, 낡은 질서 대 민주주의 같은 전선으로 묶으면 서로 다른 요구들이 하나의 정치적 연쇄를 형성한다.
헤게모니 hegemony
헤게모니는 단순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라클라우에게 헤게모니는 불완전하고 흩어진 사회적 의미들을 특정한 중심 기표 아래 임시로 묶어 질서를 만드는 정치적 과정이다.
중요한 말은 임시로다. 사회는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가 생긴다. 완벽하게 조화로운 사회가 있다면 정치는 필요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완벽한 사회를 약속하는 정치일수록 정치의 불완전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등가사슬 chain of equivalence
등가사슬은 서로 다른 요구들이 공통의 적대항을 통해 연결되는 구조다. 노동자의 불만, 농민의 불만, 청년의 불만, 지역의 불만, 소수자의 불만은 서로 다르다. 그런데 이 요구들이 모두 어떤 공통의 벽을 만난다고 느낄 때, 그것들은 서로 등가적인 요구처럼 연결된다.
이때 인민은 단순한 인구 집단이 아니라 구성된 정치적 주체가 된다.
차이의 논리와 등가의 논리
- 차이의 논리: 사회적 요구를 각각 분리해서 처리하는 방식이다. 행정, 제도, 협상, 분화가 여기에 가깝다.
- 등가의 논리: 다양한 요구를 하나의 정치적 전선으로 묶는 방식이다. 반체제적 정동, 대중적 동원, 인민의 형성이 여기에 가깝다.
행정은 차이를 좋아하고, 정치는 등가를 좋아한다. 사회가 너무 행정적으로만 굴러가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강한 정치적 이름을 찾게 된다.
적대 antagonism
적대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질서가 완전히 자기완결적일 수 없다는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어떤 체제가 모두를 대표한다고 말하지만 계속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배제는 체제 바깥의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체제 자체의 균열을 보여준다.
빈 기표 empty signifier
빈 기표는 라클라우의 가장 유명한 개념 중 하나다. 내용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요구를 대표하기 때문에 특정한 하나의 내용으로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 기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국민
- 민중
- 민주주의
- 자유
- 정의
- 개혁
- 정상화
- 공정
이런 말들은 비어 있기 때문에 약한 것이 아니라, 비어 있기 때문에 여러 요구를 담을 수 있고 정치적으로 강력해진다.
떠다니는 기표 floating signifier
떠다니는 기표는 의미가 어느 진영이나 담론에 고정될지 불안정한 기표다. 자유는 해방의 이름이 될 수도 있고, 시장주의의 이름이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정치 투쟁은 정책의 싸움이면서 동시에 단어의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이다.
포퓰리즘 populism
라클라우에게 포퓰리즘은 단순한 선동이나 비합리적 대중정치가 아니다. 흩어진 사회적 요구들이 인민이라는 집합적 주체로 구성되는 정치 논리다.
이 지점이 라클라우의 가장 불편한 대목이다. 우리는 보통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를 한꺼번에 낮은 수준의 선동으로 처리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라클라우는 묻는다. 그 판단의 기준은 정말 중립적인가, 아니면 이미 어떤 질서를 정상으로 전제하고 있는가.
주요 저작
| 연도 | 원제 | 성격 | 핵심 |
|---|---|---|---|
| 1977 | Politics and Ideology in Marxist Theory: Capitalism, Fascism, Populism | 단독 저작 | 초기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파시즘, 포퓰리즘 분석 |
| 1985 |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Towards a Radical Democratic Politics | 샹탈 무페 공저 |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헤게모니, 급진민주주의의 대표작 |
| 1990 | New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of Our Time | 단독 저작 | 혁명, 정치적 주체성, 담론 이론의 재사유 |
| 1994 | The Making of Political Identities | 편저 | 정치적 정체성 구성 문제 |
| 1996 | Emancipation(s) | 단독 저작 | 해방, 보편성, 특수성, 정치적 주체 |
| 2000 |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 주디스 버틀러, 라클라우, 슬라보예 지젝 공저 | 좌파 이론 내부의 보편성·주체·헤게모니 논쟁 |
| 2005 | On Populist Reason | 단독 저작 | 포퓰리즘 이론의 대표작 |
| 2014 | The Rhetorical Foundations of Society | 단독 저작, 사후 출간 | 수사학, 담론, 사회적 의미 구성 |
한국어 번역본과 국내 출간본
확인 범위에서 알라딘 저자 페이지에는 라클라우 관련 국내도서가 5종으로 표시된다. 여기에 국내 연구자들이 쓴 입문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를 함께 정리한다.
『포퓰리즘 이성』
- 원제: On Populist Reason
- 저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 옮긴이: 이승원
- 출판사: 빨간소금
- 출간일: 2026-01-21
- 쪽수: 404쪽
- ISBN: 9791191383645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370363
라클라우 단독 저작 중 한국어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번역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병리나 비이성적 대중 동원이 아니라 인민이 구성되는 정치적 논리로 읽도록 요구한다.
읽을 때는 다음 질문을 붙잡으면 좋다.
- 인민은 이미 있는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구성되는가?
- 대표는 왜 항상 실패하면서도 필요한가?
- 빈 기표는 왜 공허한 말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장치가 되는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 원제: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Towards a Radical Democratic Politics
- 저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 옮긴이: 이승원
- 출판사: 후마니타스
- 출간일: 2012-05-07
- 쪽수: 352쪽
- ISBN: 9788964371565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856005
라클라우를 읽는다면 사실상 출발점에 가까운 책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환원론을 비판하고, 다양한 민주주의적 투쟁들을 헤게모니적으로 접합하는 급진민주주의 정치의 틀을 제시한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단순히 노동계급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계급이 자동으로 정치 주체가 된다고 믿는 순간, 정치가 요구하는 접합과 대표의 문제를 놓친다는 것이다.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 원제: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 저자: 주디스 버틀러,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슬라보예 지젝
- 옮긴이: 박미선, 박대진
- 출판사: 비 / 도서출판b
- 출간일: 2009-06-30
- 쪽수: 461쪽
- ISBN: 9788991706187
- 상태: 알라딘 기준 품절 확인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71653
이 책은 라클라우 단독 저작은 아니지만, 라클라우의 위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버틀러, 라클라우, 지젝이 보편성, 주체, 헤게모니, 정치의 조건을 놓고 서로 다른 좌파 이론의 길을 제시한다.
친절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불친절함 때문에 세 이론가가 무엇을 서로 양보하지 않는지 드러난다.
『전쟁은 없다』
- 관련 시리즈: 무의식의 저널 Umbr(a)
- 저자: 슬라보예 지젝,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스티븐 밀러, 질 애니자, 아리엘라 아줄레, 시기 야트캔트, 페타 라마다노빅, 다이앤 루벤스타인
- 옮긴이: 강수영
- 출판사: 인간사랑
- 출간일: 2011-03-30
- 쪽수: 303쪽
- ISBN: 9788974180232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220939
라클라우 단독 저작이 아니라 여러 필자의 글이 함께 실린 번역서다. 지젝과 라클라우가 함께 저자로 등록되어 있고, 라캉주의 정치철학과 전쟁·폭력 논의의 맥락에서 읽는 보조 자료에 가깝다.
『폴레모스 : 헤게모니와 민주주의』
- 원제: Umbr(a): Polemos
- 저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외 다수
- 옮긴이: 강수영
- 출판사: 인간사랑
- 출간일: 2024-09-30
- 쪽수: 307쪽
- ISBN: 9788974186203
- 시리즈: 무의식의 저널 Umbr(a)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162660
이 책도 라클라우 단독 저작은 아니다. 헤게모니와 민주주의를 둘러싼 여러 이론적 글을 묶은 책으로 보조 독서에 가깝다. 라클라우를 처음 읽는 입문자는 먼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나 『포퓰리즘 이성』으로 중심축을 잡는 편이 낫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 저자: 김내훈, 이승원, 이준형, 현우식
-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
- 출간: 2025년 2월
- 시리즈: 컴북스 이론총서
- 쪽수: 144쪽
- ISBN: 9791173078163
- 알라딘 상품 페이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347470
라클라우의 번역서가 아니라 국내 연구자들이 쓴 입문서다. 처음 접근할 때는 이 책이 실용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라클라우의 개념은 서로 얽혀 있어서 곧장 원전으로 들어가면 헤게모니보다 먼저 문장 구조에 포위될 수 있다.
한국어 번역 여부 요약
| 원저 또는 관련서 | 한국어 출간 확인 | 국내 제목 |
|---|---|---|
| Politics and Ideology in Marxist Theory | 확인 못 함 | - |
|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 확인 |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
| New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of Our Time | 확인 못 함 | - |
| The Making of Political Identities | 확인 못 함 | - |
| Emancipation(s) | 확인 못 함 | - |
|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 확인 |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
| On Populist Reason | 확인 | 『포퓰리즘 이성』 |
| The Rhetorical Foundations of Society | 확인 못 함 | - |
| Umbr(a): Polemos | 확인 | 『폴레모스 : 헤게모니와 민주주의』 |
| Umbr(a) 관련 전쟁·정치철학 선집 | 확인 | 『전쟁은 없다』 |
확인 범위에서는 라클라우의 핵심 단독 저작 중 『포퓰리즘 이성』이 번역되어 있고, 공저 핵심작으로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과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이 번역되어 있다.
추천 읽기 순서
1.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국내 입문서로 용어 지도를 먼저 잡는다. 라클라우를 처음 읽는다면 이론적 좌표를 먼저 잡는 편이 좋다.
2.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라클라우와 무페의 핵심 선언문이다.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급진민주주의, 헤게모니론의 기본 틀이 여기서 나온다.
3. 『포퓰리즘 이성』
후기 라클라우의 대표작이다. 인민, 요구, 등가사슬, 빈 기표, 대표의 문제를 포퓰리즘 이론으로 밀고 간다.
4.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버틀러, 라클라우, 지젝 사이의 논쟁을 통해 라클라우가 어디서 강하고 어디서 비판받는지 확인한다.
5. 『폴레모스 : 헤게모니와 민주주의』와 『전쟁은 없다』
보조 독서다. 라캉주의, 정치철학, 헤게모니 논의의 주변 맥락을 넓힐 때 유용하다.
국내 정치·문화 분석에의 쓸모
라클라우는 한국 정치 담론을 읽는 데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말들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정치적 접합의 장치로 작동한다.
- 국민
- 민중
- 촛불
- 적폐
- 공정
- 상식
- 기득권
- 개혁
- 자유민주주의
이 말들은 누가 말하느냐, 무엇과 대립하느냐, 어떤 요구들을 대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표가 된다. 그러므로 라클라우식 분석은 정치인의 속마음을 추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어떤 말이 어떻게 여러 요구를 묶고 어느 지점에서 적대를 구성하는지 보는 방법이다.
아르헨티나 정치와 키르치네르주의에서의 수용
라클라우는 영미권 이론서 안에만 머문 사상가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그의 포퓰리즘론이 페론주의, 키르치네르주의, 대중적 정치 주체 형성 논쟁과 함께 읽혔다. Clarín 같은 아르헨티나 언론은 라클라우의 사망을 다루며 그를 키르치네르주의의 중요한 지적 참조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대목은 라클라우를 읽을 때 중요하다. 그의 포퓰리즘론은 추상적 개념놀이가 아니라,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정치에서 인민, 지도자, 요구, 대표, 적대가 어떻게 묶이는지를 설명하려는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즉 라클라우에게 포퓰리즘은 유럽식 교양 정치 바깥의 이상한 예외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가 대중적 이름을 만드는 일반적 형식 중 하나다.
비판적 주석을 붙이면,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어떤 이론이 실제 정치운동의 지적 언어가 되는 순간, 이론은 더 이상 깨끗한 분석 도구로만 남지 않는다. 라클라우의 포퓰리즘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대중정치를 비합리성으로만 몰아붙이는 엘리트적 시선을 비판하게 해주지만, 동시에 특정 포퓰리즘 운동의 권력 집중, 제도적 긴장, 지도자 중심성을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수용사를 함께 보면 라클라우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는 포퓰리즘을 멀리서 관찰한 냉정한 분류학자가 아니라, 포퓰리즘이라는 말 자체를 둘러싼 정치적 적대 속에 놓인 이론가였다. 문제는 그가 포퓰리즘을 옹호했느냐 비판했느냐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어떤 정치가 자기 자신을 인민의 이름으로 말할 때, 그 이름은 누구의 요구를 묶고 누구를 바깥에 남기는가.
의의와 한계
의의
라클라우의 가장 큰 의의는 정치 주체를 이미 주어진 실체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사회가 완성된 전체가 아니며, 그 불완전성 때문에 헤게모니 투쟁이 발생한다고 본다. 이 관점은 민주주의, 사회운동, 포퓰리즘, 문화정치, 담론분석에 강력한 분석 도구를 제공한다.
한계와 비판
라클라우 이론은 강력하지만 비판도 많다.
- 경제 구조 분석이 약해질 수 있다. 담론과 헤게모니를 강조하다 보면 자본주의의 물질적 구조가 흐려질 위험이 있다.
- 포퓰리즘을 너무 형식적으로 본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좌파 포퓰리즘과 우파 포퓰리즘의 윤리적·제도적 차이를 충분히 구분하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 정동과 동일시를 잘 설명하지만, 구성된 인민이 어떤 제도와 조직으로 지속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 문장이 어렵다. 이건 농담처럼 들리지만 실제 독서 난점이다. 라클라우를 읽다 보면 독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이미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핵심 정리
라클라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다음과 같다.
정치는 이미 존재하는 집단의 목소리를 단순히 대변하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요구들을 하나의 이름 아래 묶어 인민이라는 주체를 만들어내는 헤게모니적 실천이다.
라클라우의 진짜 불편함은 포퓰리즘도 정치라는 말에 있지 않다. 더 불편한 것은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는 정치조차 어떤 빈 기표, 어떤 대표의 실패, 어떤 우리라는 상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정치에서 완전히 깨끗한 언어는 없다. 깨끗함을 주장하는 언어가 때로 가장 수상하다.
출처와 참고 URL
- Verso Books, Ernesto Laclau author page: https://www.versobooks.com/en-gb/blogs/authors/laclau-ernesto
- Verso Books, On Populist Reason: https://www.versobooks.com/en-gb/products/1941-on-populist-reason
- Verso Books,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https://www.versobooks.com/en-gb/products/1158-hegemony-and-socialist-strategy
- Wikipedia, Ernesto Laclau: https://en.wikipedia.org/wiki/Ernesto_Laclau
- Wikipedia,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https://en.wikipedia.org/wiki/Hegemony_and_Socialist_Strategy
- Clarín, Murió Laclau, el mayor referente intelectual del kirchnerismo: https://www.clarin.com/politica/Murio-Laclau-referente-intelectual-kirchnerismo_0_rkeb_ZA5PXx.html
- Clarín, Murió el intelectual Ernesto Laclau: https://www.clarin.com/rn/ideas/Murio-Ernesto-Laclau_0_B1bNvZA9vQx.html
- SEDICI, Política y populismo en la Argentina de hoy: entrevista a Ernesto Laclau: https://sedici.unlp.edu.ar/handle/10915/38974
- Analytica del Sur, Ernesto Laclau: Hegemonía e Identidades Populares: https://analyticadelsur.com.ar/hegemonia-e-identidades-populares/
- Centro Andino de Estudios Estratégicos, Ernesto Laclau: Los impases de una estrategia: https://www.cenae.org/ernesto-laclau-los-impases-de-una-estrategia.html
- 알라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저자 페이지: https://www.aladin.co.kr/author/wauthor_product.aspx?AuthorSearch=@807504
- 알라딘, 『포퓰리즘 이성』: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370363
- 알라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856005
- 알라딘,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71653
- 알라딘, 『전쟁은 없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220939
- 알라딘, 『폴레모스 : 헤게모니와 민주주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6162660
- 알라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9347470
후속 확인 과제
- 국내 학술논문에서 라클라우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별도 노트로 확장할 수 있다.
- 무페의 아고니즘 민주주의와 라클라우의 헤게모니·포퓰리즘 이론을 비교하는 노트를 따로 만들 수 있다.
- 한국 정치 담론의 빈 기표 사례를 모아 빈 기표와 한국 정치 담론 같은 개념 노트로 확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