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

송재학은 「울고 있다」를 통해 다시 붙잡게 된 시인이다. 처음에는 장례식장 입구 골목에서 우는 한 여자에게 시선이 가지만, 조금 더 읽으면 이 시인은 인간보다 먼저 사물과 공간이 슬픔을 감각하게 만든다.

송재학의 시는 감정을 쓰기보다, 감정이 사물과 풍경에 남긴 물질적 흔적을 쓴다.

겉으로는 색, 냄새, 빛, 풍경의 시인이다. 그런데 그 감각은 장식이 아니다. 색은 존재를 읽는 방식이고, 냄새는 죽음의 물질성이고, 빛은 구원이 아니라 실패의 흔적이다. 문제는 감각이 아름답다는 데 있지 않다. 송재학의 감각은 아름다움을 핑계로 세계의 상처를 만지는 쪽에 가깝다.

송재학 시인 사진

이미지 캡션: 송재학 시인. 매일경제 2019년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을 작은 참고 이미지로 둔다. 공개 저장소에는 이미지를 직접 복제하지 않고 원 출처 URL을 연결한다. 출처: 매일경제, 「10번째 시집 출간한 송재학 시인」.

기본 정보

  • 이름: 송재학
  • 출생: 1955년, 경북 영천
  • 학력: 경북대학교 졸업
  • 등단: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어두운 날짜를 스쳐서」 발표
  • 직업적 배경: 대구에서 치과의사로 일해온 시인으로 소개된다.

이력에서 치과의사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낭만화하면 곤란하다. “의사라서 관찰력이 좋다”는 말은 너무 평평하다. 더 흥미로운 건, 그의 시에서 세계가 거의 진단 대상처럼 나타난다는 점이다. 다만 그 진단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감각적 해부다. 입, 치아, 뼈, 통증, 피, 침, 말의 기관을 오래 다루는 사람의 감각이 시에서는 색과 냄새와 그림자와 상처의 언어로 번진다.

주요 시집

확인 가능한 주요 시집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 『얼음시집』, 1988
  • 『살레시오네 집』
  • 『푸른빛과 싸우다』, 1994
  •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1997
  • 『기억들』, 2001
  • 『진흙얼굴』, 2005
  • 『내간체를 얻다』, 2011
  • 『날짜들』, 2013
  • 『검은색』, 2015
  • 『슬프다 풀 끗혜 이슬』, 2019
  • 『아침이 부탁했다, 결혼식을』
  • 『습이거나 스페인』

『검은색』은 「울고 있다」가 수록된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송재학의 오래된 감각, 특히 색과 풍경에 대한 집요함은 검음, 어둠, 소멸, 죽음 쪽으로 더 깊게 내려간다.

수상과 문단 위치

자료에서 확인되는 주요 수상 이력은 다음과 같다.

  • 김달진문학상
  • 편운문학상
  • 전봉건문학상
  • 소월시문학상
  • 대구문학상
  • 2022년 제11회 황순원문학상 황순원시인상

송재학은 넓은 대중적 인지도보다 문체적 지문이 강한 시인에 가깝다. 이름을 가려도 송재학의 시라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감각의 방식이 뚜렷하다. 이때 감각은 단순한 묘사력이 아니라, 세계를 읽는 윤리다.

시세계의 핵심 감각

1. 감각은 장식이 아니라 인식이다

한국문학번역원 작가 소개는 송재학이 감각과 이미지, 특히 색깔을 중요하게 다뤄온 시인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은 맞지만 조금 더 밀어야 한다.

송재학에게 색은 예쁜 표면이 아니다. 색은 존재의 상태를 알아보는 방식이다. 『검은색』 관련 기사에서 검은색은 단순한 색깔이 아니라 모든 빛을 흡수하고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어둠의 색으로 설명된다.

그러니까 검은색은 죽음의 상징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검은색은 모든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 상태다. 애도 역시 그렇다. 슬픔은 다 받아들이지만, 곧바로 말로 반사되지 않는다.

2. 사물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한다

송재학 시에서 사물은 배경이 아니다. 가로등, 골목, 그림자, 창고, 공중, 나무, 새 같은 것들이 감정의 주변 장식으로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사물이 떠맡는다.

「울고 있다」에서 이 특징은 매우 뚜렷하다.

  • 가로등은 울음을 두 손으로 움켜쥐려 하지만 실패한다.
  • 가로등은 불을 켰다 껐다 하며 여자의 주위를 맴돈다.
  • 골목 그림자는 사람 얼굴의 일부인 인중을 얻는다.
  • 울음은 사람에게서 떨어져 골목의 요철로 남는다.

인간은 울음을 멈춘다. 하지만 사물은 계속 운다. 송재학의 세계에서는 감정이 내면에 갇히지 않고 외부 세계의 표면으로 옮겨붙는다.

3. 불쾌한 감각의 윤리

송재학의 감각은 예쁜 감각만이 아니다. 「울고 있다」의 “비린내”가 좋은 예다. 장례식장 앞이라면 흔히 향냄새, 국화, 촛불, 조문객의 소리 같은 이미지를 예상한다. 그런데 이 시는 좁은 골목에서 차들이 뒤엉키며 비린내를 반복한다고 쓴다.

비린내는 깨끗한 추모가 아니다. 그것은 피, 몸, 생선, 습기, 죽음의 물질성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이 시가 장례의 고상한 언어로 도망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말 무서운 건 죽음이 숭고하게 보이는 순간이 아니라, 죽음 주변에서 세계가 너무 물질적으로 냄새난다는 사실이다.

4. 시는 비명이고 무늬다

매일경제 2019년 인터뷰에서 송재학은 시를 “어떤 비명, 어떤 무늬”라고 말했다. 이 표현은 「울고 있다」를 읽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울음은 비명이다. 그런데 그 비명은 소리로만 남지 않는다. 골목에 요철을 만든다. 즉 비명은 표면에 무늬를 남긴다.

「울고 있다」의 마지막에서 울음은 여자의 몸을 떠나 골목의 굴곡이 된다. 애도는 마음속 감정의 정리가 아니라, 세계의 표면에 생긴 무늬를 더듬으며 살아가는 일로 바뀐다.

『검은색』과 연결하기

『검은색』은 문학과지성사에서 2015년에 나온 송재학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울고 있다」는 이 시집의 세계와 잘 맞는다. 겉으로는 여자의 소복, 즉 흰색이 보이지만, 이 흰색은 밝은 위로나 순결의 색이 아니다. 시에서는 여자의 소복이 가로등에 “부담”으로 제시된다.

흰색은 어둠을 지우지 못한다. 오히려 어둠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울고 있다」의 흰 소복은 검은색의 반대가 아니라 검은색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송재학을 읽는 법

송재학을 읽을 때는 “무슨 뜻이지?”보다 먼저 다음을 보면 좋다.

  1. 색을 본다. 검은색, 푸른빛, 흰색, 진흙색 같은 색이 단순 묘사인지, 존재의 상태인지 구분한다.
  2. 사물이 언제 인간처럼 행동하는지 본다. 가로등, 골목, 그림자 같은 것들이 어느 순간 주체가 되는지 확인한다.
  3. 감각이 어디서 불쾌해지는지 본다. 비린내, 습기, 검음, 진흙, 어둠이 시를 안전한 아름다움 밖으로 끌고 간다.
  4. 후반부 관념이 앞의 이미지에서 어떻게 솟아나는지 본다. 송재학의 시는 구체적 감각에서 갑자기 형이상학으로 상승하는 순간이 있다. 이 상승이 성취이자 위험이다.

「울고 있다」와의 연결

송재학을 알고 다시 「울고 있다」를 보면, 이 시의 핵심은 더 분명해진다.

이 작품은 장례식장 시라기보다 송재학식 사물 애도시다. 여자의 울음은 출발점이고, 진짜 사건은 울음이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와 골목, 가로등, 그림자, 냄새, 관계의 요철로 옮겨붙는 데 있다.

애도란 마음속에서 슬픔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송재학에게 애도는 세계의 표면에 생긴 굴곡을 더듬는 일이다.

출처와 참고 URL

한 줄 메모

송재학은 인간의 감정을 직접 고백하기보다, 그 감정이 사물과 풍경에 남긴 냄새, 색, 그림자, 요철을 쓰는 시인이다.